박연준, 장석주 시인과 함께하는 낭만 달밤 시(詩) 콘서트
선선한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밤이면 유난히 귀뚜리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런 날은 미지의 소년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소나무가 지켜주는 뒷동산에서 뛰놀던 유년을 떠올리며 달려간 곳은 광명도서관 아담한 야외무대.
<대추 한 알>이라는 시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인 장석주, 박연준 부부가 광명에 오신다니….
주말 6시를 위해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접어가며 기다렸다.
드디어 4시 30분.
소하2동에서 2번 버스를 탔다가 12번으로 환승했다.
그러나 내리는 곳을 헷갈려 종점까지 가고 말았다.
몇 번 갔던 곳인데 길치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며 헤매고 있을 때, 단정하고 곱상한 남학생을 만났다.
광명도서관 어디로 가야 하지요?
설명해서 알아듣지 못할 사람인 줄 직감했던지 자신이 도서관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세상에나!
광명7동에 사는데 서서울생활과학고 1학년이란다.
사거리에 가는 길인데 시간 여유가 있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광명의 미래가 엊그제 본 슈퍼문처럼 아주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광명은 따뜻하고 희망이 있는 도시다.
토크쇼 시작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행사장은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고, 사전에 신청한 시민들이 안내석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 서명하고, 질문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달밤 콘서트인데 어둠이 깔리지 않아 김이 샜지만, 선선한 가을 공기가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어반웨이브 사회적협동조합 김미숙 이사장님의 사회로 콘서트는 시작됐다.
감성을 촉촉하게 열어주고 영혼을 꽉 채워주기 위한 소프라노 박서정 님이 「Nella fantasia」를, 바리톤 문영우 님이 「시간에 기대어」를 공연했다. 바리톤의 묵직한 음색이 가을밤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어서 독서를 좋아하고, 문학을 흠모하는 광명 시민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면서 기다리던 박연준, 장석주 작가님이 등장했다.
사막 같은 인생길에 서 있는 우리들의 외로움과 갈증을 풀어줄 별처럼 따뜻한 사람 장석주, 박연준 부부와 함께하는 힐링 여행이 시작되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 멋스럽고 가을밤에 잘 어울리는 사회자의 잔잔하면서 깔끔한 진행이 돋보였다.
특히 장석주, 박연준 작가를 소개하는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사랑이 밥 먹여 주더라’라는 주제에 딱 어울리는 소개였다.
장석주 시인이 박연준 시인께 전합니다.
내 이름이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박연준 시인이 답했습니다.
내 사랑에 대한 첫 독서는 당신이라는 책이었다.
두 분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벽에 나무 둘처럼 행복하다.
도서관을 감싸고 서 있는 나무들에 가을이 물들고 있듯 어둠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광명도서관 마당에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왜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일은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가 않는지 모르겠다.
박연준 시인이 파주에서 온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하는데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 산문집, 장편소설까지 10여 권의 빛나는 저서를 발간한 작가의 인사말이 참으로 수수했다.
장석주 님은 박연준 시인과 함께 가계부를 쓰며 시를 쓰고 비평을 하는 장석주라고 인사를 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지 20년, 결혼한 지 8년째라는 독서광, 책을 사랑하는 장석주 시인은 부부의 인연을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과 10년 20년 연애를 하고 같이 호흡하면서 산다는 것은 굉장한 인연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구에 8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딱 한 사람을 찍어서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매일 새벽에 이 사람이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면서 오늘도 기적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박연준 시인은 덧붙여서 이렇게 말했다.
“기적이라는 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
그것이 기적이다.
작은 것들이 기적이다.
오래 할 수 있는 것, 그 사람을 좋아하고 매료되는 것 그것은 대단한 일이고 기적이다.
우주의 별 하나가 떠다니다가 충돌하는 기적 같은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인데 그 기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깊어가는 동안 토크쇼도 깊어져 갈 때 장석주 시인은 광명시민들에 대한 화답인지 기형도 시인 이야기를 꺼냈다.
기형도 시인이 제일 좋아한 시인이 장석주였다는 말도 근거를 제시하며 들려주었다.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이야기, 인구 감소에 대한 이야기, 취업난 등의 심도 있는 이야기로 토크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무르익었다.
시민들 여덟 명이 유명 시인의 시와 장석주, 박연준 시인의 시 그리고 자작시를 낭송하는 동안 꽤 지루할 법한 시간이었지만, 박연준, 장석주 부부는 시종 온화한 미소로 자리를 지켰다.
모두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냈다.
엔딩 공연으로 바리톤 문영우 님의 「If I Can’t Love Her」, 소프라노 박서정 님의 「첫사랑」 그리고 듀엣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룰 불렀다.
정말 멋진 밤이었다.
도심이지만 도심 같지 않게 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서늘한 가을밤에 촉촉한 노래를 감상하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큰 축복의 시간이었다.
장석주, 박연준 시인은 주최측에서 준비한 책자에 직접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낭만 달밤 시(詩) 콘서트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들어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를 시처럼, 산문처럼 말씀하시는 부부의 모습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날 행사는 광명도서관에서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도서관에서 즐기는 ‘문화살롱’의 일환으로 마련한 일상 속 힐링 여행이었다.
시인과의 대담, 문화예술 공연을 통해 문화예술의 향유 폭과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서 준비했고, 어반웨이브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진행했다.
어반웨이브 사회적협동조합은 경기도 내 소외계층을 위한 독서문화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지자체 행사나 도서관 북 페스티벌, 북 콘서트 등의 행사를 진행하는 단체이다.
콘서트 참가자는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을 받았으며 신청자는 10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실지로 현장에 모인 인원은 그보다는 조금 적었던 것 같다.
뜻깊고 품격 있는 행사에 빈자리가 눈에 띄어 많이 아쉬웠다.
낭만 달밤 시(詩) 콘서트를 만난 올가을은 내내 감성 충만한 시간으로 이어질 것 같다.
글·사진 : 광명시 우리마을기자단 박갑순
https://blog.naver.com/rongps
[출처] 사랑이 밥 먹여준다고?|작성자 광명시
urbanw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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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8 15:00